Matrix : 과학과 신화의 사이

Matrix

matrix  
ma·trix [mitriks, mt-]
( ~·es, -tri·ces [-trisì;z])
1 (발생·성장의) 모체, 기반(基盤), 발생지.
2 〈해부〉 (손톱·이빨 따위의) 형성부; 〈생물〉 세포 간질(間質), 기질(基質).
3 〈해부〉 자궁.
4 〈광산〉 모암.
5 주형(鑄型); 〈인쇄〉 모형(母型), 자모, 지형(紙型).
6 〈수학·물리〉 매트릭스, 행렬.
7 〈오디오〉 (레코드의) 원반(原盤), 금형, 마스터.
8 〈광물〉 =gangue.
9 〈식물〉 (지의(地衣)·균류의) 모체.
10 〈컴퓨터〉 매트릭스(입력 도선과 출력 도선의 회로망).
━ 〔레코드·테이프 따위의 신호〕를 매트릭스화하다.

(Yahoo 영어사전 에서)


< 매트릭스의 양면 >
매트릭스의 제목 Matrix를 우리말로 해석한다면, SF란 장르에 걸 맞게 10번째 뜻인 '컴퓨터의 입력도선과 출력 도선의 회로망'이 가장 알맞을 것이다. 이 지극히 과학적인 단어의 또 다른 뜻은 '자궁'이다. 매트릭스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지만, 그 제목자체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 10번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제목을 3번의 뜻으로 해석하면 또 다른 세상, 바로 신화의 세상이 열린다.

전 세계에 걸쳐 농경 문화권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화 중 하나가 인간이 대지의 자궁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다. 다음은 '신화의 힘'(조셉캠벨. 고려원)에서 인용한 서남 아메리카의 한 신화다.

"땅 밑 아주 깊은 곳에는, 사람은 사람이되 진짜는 아닌 사람, 자기네들이 사람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삽니다. 그런데 이들 중 하나가 금제를 어깁니다. 그러자 큰 물이 밀어닥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위로 올라갈 수 밖에 없지요. 이들은 밧줄을 타고 올라, 이들 세계의 천장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빠져나갑니다. 빠져나가고 보니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더라지요."

와우! 매트릭스의 복사판이라 할 정도로 똑같은 이야기가 이미 몇 백년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아니 몇 천년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같은 이야기가 그 시대에 맞게 변주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신화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은 대지에서 나온다. 여기서 대지는 어머니의 상징이다. 인간은 이런 대지의 한 구멍을 통해 나오고 그 구멍은 성소가 된다. 이것이, 땅에서 나는 음식물을 먹고 사는 인간의 신화다.

< 네오는 매트릭스의 구멍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

매트릭스를 자궁으로 해석한다면, 매트릭스는 최소한 현재는 인간의 어머니가 되어버린다. 실제 매트릭스내의 인간들은 다르게 해석하면 매트릭스로 부터 나오는 것을 먹고 사는 매트릭스의 자식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 모든 것의 원초가 되는 여신으로 여러 신과 인간은 그녀에게서 발생했다.>

하지만 왜 영화 내에서 매트릭스는 악한 쪽인가? 유심히 보면 매트릭스가 악하게 해석되는 것은 시온 측의 눈에서 볼 때 뿐이다. 시온 측의 눈만 벗어나면 매트릭스는 전혀 악하지도 않고 오히려 해석하기에 따라 선한 쪽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왜 그런가? 그 의미는 영화 내 또다른 축, 바로 Zion(시온)에서 찾을 수 있다.

... to be continue...

덧글

  • 지성의 전당 2019/01/24 21:49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트릭스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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